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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유언장[2] 팽귄2 14-01-28 547




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조탑리 노인들은 많이 놀랐다고 한다. 


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으로 생각했는데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이 


몰려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걸 보고 놀랐고, 병으로 고생하며 겨우겨우 하루를 


살아가는 불쌍한 노인인 줄 알았는데 연간 수천만 원 이상의 인세수입이 있는 


분이란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. 그렇게 모인 10억 원이 넘는 재산과 앞으로 생길 


인세 수입 모두를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조목조목 유언장에 


밝혀 놓으신 걸 보고 또 놀랐다고 한다. 동네 노인들이 알고 있던 것처럼 


권정생 선생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병들고 비천한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. 


세속적인 욕심을 버렸고 명예와 문학권력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으셨다. 


10여 년 전 윤석중 선생이 직접 들고 내려온 문학상과 상금을 우편으로 


다시 돌려보냈고, 몇 해 전 문화방송서 ‘느낌표’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 


책 읽기 캠페인에 선정도서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걸 거부한 바 있다. 


그때 달마다 선정된 책은 많게는 몇백만 부씩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바람이 


불 때였는데 권 선생은 그런 결정 자체를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로 여기셨다. 


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은 다섯 평짜리 흙집이다. 그 집에서 쥐들과 함께 살았다. 


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찾아간 집 댓돌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 


있었다. 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다.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신발과 옷을 


생각하며 부끄러웠다.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신을 사들이고 


다시 구석에 쌓아두면서 더 큰 신장으로 바꿀 일을 생각하는 우리의 욕망, 


우리는 앞으로도 내 욕망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 것임을 


생각하며 민망했다.  


도종환 | <경향신문> 2007년 5월 31일자에서



http://ko.wikipedia.org/wiki/%EA%B6%8C%EC%A0%95%EC%83%9D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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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엄마엄마] 검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..남이 날 무시할까봐 어느정도 있어보이게 하고 아이들 교육에 투자하는 모습들을 보면..정말 쉽지않아요..아..정말..자존감이 무지무지 큰 사람이되고싶네요..ㅠㅠ

2014.01.29

댓글댓글

[스타터] 감동적이네요. 검소하게 사는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것 같아요.
자주 접해야 자극을 받을 것 같습니다.

2014.01.29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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